자기소개서, 정말 오래간만에 써 봅니다(feat. 교육공무직)
by 아몬드바나나나에 대하여
꽤 오랫동안 비자발적 백수로 지내왔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고 회사도 정규직으로 몇 년 다녀봤는데, 어쩌다 보니 비자발적 백수가 되었네요. 아이들이 어리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의 선택이 대게 그러하듯, 저는 퇴사하고 남편은 직장을 다니며 지낸 시간이 5~6년 되어갑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닌데 나이 든 시어머니의 '밥하는 애, 노는 애, 시골에 와서 밥하고 청소나 해라'라는 말에 너무 화가 났었어요.
꽤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고 회사에서 직급이 승진하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저를 부하직원 대하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뭔가 하고 싶다'라고 언뜻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사회생활과 단절되었었고 나를 누가 써줄까 하며 자괴감에 빠져있던 제게 남편과 시어머니는 불을 지르다 못해 휘발유를 뿌렸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의 자격지심이 더해져서) 은근히 계속되는 무시에 약 1년을 정말 이혼을 불사하고 싸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댁에 가지도 않고요.
'엄마가 가진 자격증 중 돈 되는거 하나 없어'라고 말한 남편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지고 있던 자격증 하나 가지고 갑자기 취직을 해 버렸습니다. 처음은 무서웠지만 코로나19로 처음에는 비대면으로 업무를 시작하다 보니 이것도 해볼 만하더라고요.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고, 하루아침에 사회로 나갔는데 거기에 내 책상이 생긴 것이 행복하고 고마워서 즐겁게 다녔다고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물론 첫 월급을 받자마자 남편이 "이제 돈 벌어오니까 생활비 안 줘도 되겠네"라며 생활비 자동이체를 끊어버렸지만요.
자발적 백수로 다시 태어나기
어찌됬든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계약이 끝난 후에는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자발적 백수'가 아니었어요. 조금, 아주 조금 저에 대한 소문이 아름아름 나면서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고, 일할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살짝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비자발적 백수가 아닌 자발적 백수로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물론 저를 좋게 봐주신 주변 분들 덕분이지 제가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작은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엄마의 부재를 너무 크게 느껴 지금은 풀타임보다는 파트타임으로 잠깐씩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정규직에 풀타임 직업도 아니지만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그만둔 이래 처음으로 제 인생의 결정권을 제가 쥐었다는 점에서 마음은 행복하네요. 아이가 원할 때는 함께 있어줄 수 있고, 일을 할 여건이 될 때는 선택해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물론 급여가 적어요!).
오늘은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자기소개서를 써 보았습니다. 원래 근무하던 직종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이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급하게 연락이 와 오늘까지 원서를 받는다며 넣어보라고 하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작년 이맘때 즈음에도 같은 직종에 원서를 넣어보았었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때는 탈락 메일을 받고 나서 울고 싶을 정도로 슬펐어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돈 못 버는 집에서 노는 애' 드립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거든요. 올해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서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응시직종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제 마음이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작년에 쓴 지원서랑 같은 문항에 대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도 내용이 참 많이 달려졌음을 느낍니다.
1. [지원동기 및 업무이해도]
지원하고자 하는 직종을 선택한 이유와 응시 직종 업무에 대하여 자유롭게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00자 이내)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교육행정실무사의 업무에 대해서 알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교는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만큼 해야 할 업무가 다양합니다. 학교에서 업무를 한다고 하면 가르치는 업무가 가장 중요하고 그 외의 업무는 부수적인 일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그 업무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일선 선생님들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꼼꼼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지원하였습니다.
2. [조직 적응력 및 문제해결력]
응시자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갈등 상황이 일어났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였는지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00자 이내)
사람은 다양하고 각자 가진 생각과 받아들이는 것이 다릅니다. 문제가 발생하여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거나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항상 나의 입장만을 주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갈등이 더 심하게 번질 수 있습니다.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준다면 상대방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상대가 조금 진정하고 난 후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원활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자기 계발 및 직무적합성]
응시자에게 부족한 역량은 무엇이며, 그 역량을 향상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00자 이내)
다양한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많이 해결하려는 욕심이 있어 업무의 효율은 좋으나 간혹 업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늘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최선이나 역량의 부족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울 때면 정중히 거절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처리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하다가 실수를 만들기보다는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마감기한을 스스로 정하는 일은 쉽지 않으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하기에 끊임없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백수가 되면 좋은 것들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아이를 키우니 시댁에도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고, 시어머네가 '그럼 니가 노는 애지 일하고 돈 벌어오는 애냐'라고 했을 때 반박하지 못했었죠.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내 손으로 돌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었다면 조금 더 행복하고 당당 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자발적 백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나 스스로가 선택권을 가지고 선택한 삶이니 누가 뭐라고 하든 당당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엄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속상하고 불편하다면 그 상황을 '나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원할 때면 언제든 일을 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일을 하지 않고 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너무 오랫동안 힘들었고, 작년과 재작년에 인생을 바꿀 각오를 하고 싸워가며 얻어낸 생각들이라 조금 무겁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늘 머리가 아팠던 날들이 '선택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해소되더라고요.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 머리가 아프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 자발적 백수로 오늘을 살아가는 아무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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